“공무원 생활 중 안타까웠던 점은 (방역이) ‘강화 일변도’였다는 점이다”
김정주 농식품부 구제역방역과장이 5월 21일 여주 썬밸리호텔에서 열린 동물방역 국제워크숍에서 구제역,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럼피스킨, 포유류 조류 인플루엔자(AI) 감염 등 주요 방역정책을 소개하다 전한 말이다.
강화하는 쪽으로만 흘러온 방역대책을 어떻게 완화할 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국가주도 방역 강화 일변도에 공무원들부터 이탈
이번 워크숍은 경기도청이 미국 콜로라도주립대와 함께 마련했다. 그만큼 경기도 소속 수의직 공무원들을 다수 만날 수 있었다.
경기도는 북부 동물위생시험소를 따로 둘 정도로 넓고 축산 규모도 커 수의직이 많다. 서울과 가까워 상대적으로 선호도도 높았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다르다. 시군이 아닌 경기도청 소속 수의직마저 채용 미달이 이어지고 있다.
올해 경기도가 채용을 공고한 경기도청 수의7급은 18명이다. 이날 관계자들에 따르면 올해는 신청자조차 18명에 미치지 못했다. 실제 채용인원은 10명 미만일 전망이다. 이러한 미달은 지난해에도 벌어졌다.
한 경기도 소속 수의직 공무원은 “경기도 선호도가 높다는 것은 옛말이다. 서울시도 수의직 채용은 미달된다고 한다”며 시군은 경기도로, 경기도는 서울로, 서울은 또 다른 곳으로 더 나은 조건을 찾아 이동한다고 전했다.
이 같은 공직 외면의 기저에는 우선 처우에 대한 불만족이 있다. 굳이 반려동물 임상 선호 현상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비임상 분야를 원하는 수의사들도 일반 업계에 진출하면 공무원보다 훨씬 높은 급여, 더 나은 근로 조건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돈만 문제인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방역업무가 너무 많고, 일선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탑다운(TOP-DOWN)으로 내려온 일이 좀처럼 개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워크숍에 모인 전문가 패널들은 대부분 국가주도의 방역보다 농장 중심의 자율방역이 더 효율적이라고 지목했다.
원론적인 말일 수도 있지만, 국가주도의 방역이 강화되다 못해 이를 시행하는 공무원들부터 이탈하고 있는 한국에선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방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건 사람, 사람, 사람
‘열심히 한다’는 명제만 남은 업무 쌓여
“축산 수출국도 아닌데..방역 목표부터 명확해야”
이번 워크숍에서 사흘간 초청강연을 이어간 콜로라도주립대 모 살만 교수와 산게타 라오 교수는 동물질병 예찰시스템의 구성 요소를 설명하며 ‘사람’을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예찰 프로그램을 실현할 인력이 충분한지, 지속가능한지부터 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성 전남대 교수도 방역 시스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나 뉴질랜드 등 축산 선진국에서는 신규 질병에 대한 대응을 준비하면서 ‘얼마나 사람이 필요할 지’를 핵심적으로 연구한다는 것이다.
김정주 과장도 이날 럼피스킨 방역 완화 기조를 설명하면서 이 같은 문제를 함께 거론했다. 럼피스킨처럼 사회적 재난으로 볼 수 없는 질병까지 지나치게 강하게 관리하면, 안그래도 부족한 가축방역관이 더 힘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육돼지는 물론 멧돼지에서도 ASF 발생이 줄었지만 돼지가 권역 내외로 이동할 때나 모돈이 출하될 때 정밀검사를 받도록 한 대규모 능동예찰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꼽을 수 있다.
이 같은 능동예찰은 방역당국이 미처 모르는 새에 감염돼지가 이동할 가능성을 염두한 조치로 풀이된다. 증상 여부와 관계없이 무조건 하는 검사다 보니 방역업무에 가해지는 업무부담이 매우 높다.
하지만 이번 워크숍에서 강해은 검역본부 해외전염병과장이 소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ASF 바이러스는 여전히 고병원성을 유지하고 있다. 감염된 돼지는 죽는다. 바꿔 말하면 감염 개체를 찾기 쉬운 셈이다. 때문에 농장이 일부러 숨기려 하지 않는 한 ASF 감염 사실을 모른 채 돼지를 이동시킬 가능성은 매우 낮다. 르반판 베트남국립농업대 교수는 지난해 FAVA 2024 초청강연에서 “발열 없는 돼지에서는 채혈해 검사해도 ASF를 찾을 수 없다”고 잘라 말하기도 했다.
국내에서 더 이상 발생하지 않고 있는 돼지 오제스키병이나 돼지열병(CSF) 예찰이 유지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처럼 효율성은 떨어지면서 ‘열심히 한다. 방역을 강화했다. 줄이거나 중단하자니 책임이 돌아올까 불안하다’는 명제만 남은 업무가 쌓이다 보니 젊은 수의사들부터 공직을 외면했다.
워크숍에 참가한 또다른 수의직 공무원은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주목한 점은 ‘방역의 목표가 명확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축산 수출국도 아닌 우리나라가 호주, 덴마크, 브라질 같이 청정화를 목표로 강력한 방역정책과 수많은 규제, 예산을 들이는 게 맞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주요 질병 발생 여부가 축산물 수출입의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을 두고서도 “물론 비관세 무역장벽을 위해서도 방역에 아예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지만, 지금처럼 일선의 수용한계를 넘어선 정책을 계속 펼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정부에서도 변화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김정주 과장은 “올해 브루셀라 예찰을 축소 조정했고, 오제스키 예찰도 줄였다”면서 CSF 등의 청정화 추진 의지도 내비쳤다. 업무 효율화를 위한 국가가축방역통합시스템(KAHIS) 고도화에도 나선다.
출처 : 데일리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