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대 국회 첫 수의사법 개정안이 나왔다. 동물원·수족관의 상시고용 수의사가 동물병원 개설 없이도 소속된 동물원·수족관의 동물을 진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병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경기 평택을)은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수의사법 개정안을 14일 대표발의했다. 이병진 의원은 수의사법을 소관하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이다.
개정안은 동물원·수족관 동물이 자가진료 허용 대상에서 빠지면서 수의사처방제 상시고용 수의사 제도와 맞지 않는 부분을 정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동물 진료에 반드시 필요한 의약품·기기를 수급하려면 동물병원 개설이 필수적인만큼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효과는 제한적일 것으로 보인다.
자가진료에 기반 둔 ‘상시고용 수의사’
동물원·수족관은 자가진료 X 상시고용 수의사 O
현행 수의사법은 수의사라 하더라도 동물병원을 개설해야만 동물진료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원장이든 봉직수의사든 동물병원에 속한 채로 동물을 진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예외가 있다면 ‘상시고용 수의사’ 제도다. 축산농장이나 동물원·수족관 등에 상시고용된 수의사로 신고된 경우, 동물병원에 속하지 않은 채로도 해당 시설이 보유한 동물에 한해 진료 후 처방전을 발급할 수 있다.
상시고용 수의사 제도는 2013년 수의사처방제가 도입되면서 일부 축산농가의 불편을 덜기 위한 예외조항으로 함께 만들어졌다. 축산농가의 자가진료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어차피 축산농가에 고용된 수의사는 동물병원에 속하지 않더라도 해당 농가의 동물은 합법적으로 ‘자가진료’ 할 수 있는 상태였으니, 상시고용 수의사라는 형태로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처방권만 추가로 열어준 셈이다.
이후 2017년 반려동물 자가진료를 금지하기 위해 수의사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자가진료 허용 축종은 축산농가의 가축으로 축소됐다. 그러면서 동물원·수족관의 동물에 대한 자가진료도 함께 금지됐다.
하지만 상시고용 수의사 제도는 오히려 동물원·수족관으로 확대됐다. 2020년 수의사법이 개정되면서다. 자가진료는 할 수 없지만, 처방대상 동물용의약품에 대한 처방권은 가지게 된 셈이다.
개정안은 “동물원등에 상시고용된 수의사는 간단한 처방만이 가능해, 동물의 급성 질병이나 부상 등 위급한 상황에서도 진료가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라며 “동물원등에 상시고용된 수의사는 동물병원을 개설하지 않더라도 해당 동물원등의 동물에 대해 진료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동물 복지 증진에 기여하려 한다”고 개정 취지를 명시했다.
동물원·수족관에 상시고용된 수의사에게 자가진료 권한을 부여하는 내용으로 풀이된다.
동물병원이어야 인체약·의료기기 수급 가능
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 ‘개정안은 한계..동물병원 형태여야’
하지만 동물원·수족관 동물을 실질적으로 진료하려면 결국 동물병원이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물을 진료하는데 필요한 인체용의약품이나 마약류, 방사선기기 등은 동물병원 형태로만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서울동물원이나 에버랜드, 청주동물원 등 일정 규모를 갖춘 동물원은 대부분 자체 동물병원을 갖추고 있다.
일부 동물원·수족관은 자체 동물병원이 없어 외부 동물병원에 촉탁 진료를 의뢰하는 방식을 취하기도 하는데, 개정안처럼 동물원·수족관의 수의사 직원에게 자가진료를 허용한다 해도 동물병원이 아닌 이상 활동 범위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
상시고용 수의사만 있고 동물병원은 없었던 대전 오월드도 결국 대전시가 동물병원을 개설하는 방식으로 해법을 찾았다.
개정안에 대해 한국동물원수족관수의사회는 “(개정안은) 실질적인 진료가 가능한 수준이 되지는 못할 것”이라며 “동물원·수족관 동물도 제대로 진료하기 위해서는 동물병원 개설이 필요하다”고 전했다.